니콜라스 월터스토프 <정의와 평화가 입맞출 때까지> 우리 사는 세상

월터스토프의 책 그리고 아이티에 대해... 뉴스앤조이에 실었던 글..


정의와 평화가 입맞출 때까지. 니콜라스 월터스토프.

아이티가 겪은 참상은 단순히 예측할 수 없는 자연 재해 이상이다. 아이티를 돕기 위해 온 세계로부터 손길이 모이고 있지만, 아이티가 겪는 현실은 단지 오늘의 문제가 아니라 기나긴 식민지 시절의 참혹함들이 누적되어 온 결과임을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아이티와 같은 가난한 제3세계 국가의 문제는 구조적으로 접근되지 않는 한, 세계로부터의 도움은 자칫 한 순간의 온정에 그칠 수 있고, 아이티의 가난을 더욱 심화시키게 될 수도 있다. 니콜라스 월터스토프(Nicholas Wolterstorff)의 책 <정의와 평화가 입맞출 때까지>(홍병룡 옮김, IVP, 2007)는 이 부분을 분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저자 월터스토프는 칼뱅주의가 오늘의 개혁운동에 주는 함의를 새롭게 하고 있다. 이를 위해 저자는 "세계형성적 기독교"라는 말을 선호한다. 이 말이야말로 기독교를 가장 잘 표현하고 있는 말이라는 것이다. 각 시대마다 기독교가 단행하는 개혁의 모습은 다를 수 있어서 그들의 강령과 이데올로기를 오늘에 적용할 수는 없겠지만, 최소한 자기가 몸담은 사회 질서의 개혁을 위해 투쟁하는 것은 주님께 부름받은 그리스도인들의 사명 가운데 하나이다. 우리의 일상적 삶에 어떤 악하거나 위협적인 문제가 있을 때에 대부분의 종교는 이러한 실제적 현실로부터 등을 돌리고 더 고상한 실재로 나아가는 것을 그 목표로 삼는다. 저자는 이러한 종교를 "회피적 종교"라고 부르는데, 이와는 달리 "일상적 삶에 무언가 열등한 것이 있음을 인식한다는 점에서는 같지만, 그것을 묵인하고 등을 돌리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개혁하려고" 애쓰는 것을 "형성적 종교"라고 부른다.

세계를 형성하는 신앙을 실천속에서 담아내고자 할 때에 당연히 수반되는 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 대한 올바른 분석일 것이다. 월터스토프의 책이 빛나는 것은 하나님을 향한 감사와 순종이라는 원칙이 세상 질서를 분석하고 변혁하고자 하는 일상으로 이어진다는 점일 것이다. 그는 각 사회가 고도의 근대화를 이룰 수 있다는 근대화론에 파산을 선고하면서 월러스타인(I. Wallerstein)의 "세계체제론"을 적극적으로 검토한다. 남미와 같은 지역의 억압적 상황은 그 지역에 미친 미국의 영향을 고려하지 않고는 설명할 수 없으며 결국 저개발 국가들은 고도 개발국가들의 하청 구조안에 편입될 수 밖에 없다. 여기에는 서구 자본주의 국가의 발전에 주변부 국가들이 희생되었다는 것에 대한 인정과 관찰이 있다. 흔히들 가난한 나라들의 국민성을 폄하하는 것으로 문제를 회피하지만, 이것은 국민성이나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서구 중심부 국가들의 발전을 위해 주변부 국가들을 재편한 결과에서 기인한 것이 훨씬 근본적인 원인인 것이다. 월터스토프가 예를 들고 있듯이, 자생적이고 완결적이던 방글라데세의 경제는 서구 세력의 진입 이후 완전히 영국 경제의 하부 구조로 재편되어 버렸고 그 모든 자생성과 자립성은 박탈되어 버렸다. 그래서 더 이상 영국과의 관계가 없으면 존속할 수 없는 상황이 되고 만 것이다. 결국 서구 중심부 국가들은 스스로 주변부 국가들이 발전하고 성장할 상황 자체를 박탈해 버린 채, 원조해도 여전히 개발되지 않는 현실을 국민성으로 돌리는 일을 행하고 있는 것이다. 전체로서의 세계 체제를 보지 않고 단일 국가 내부의 일만을 분석한다면 반드시 우리는 우리가 속해 있는 국가의 행복이 다른 국가의 가난한 사람의 희생 위에 선 것이라는 점을 간과하게 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월터스토프의 분석은 참으로 정직하며 진실하다. 현실에 대한 냉철한 인식 위에서 월터스토프는 참으로 이 세상 가운데서 "정의와 평화"를 가져오는 길이 무엇인지 모색하고 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어떤 정치적 경제적 조치들을 취하려고 할 때에 이것이 가난한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에 대해 근본적으로 평가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가장 초보적인 일이면서 가장 근본적인 일이다. 이것이야말로 성경적이다. 국가의 존재는 성장과 발전을 위한 정책을 수립함에 있어서 최우선적으로 이러한 정책들이 가난한 사람들의 삶에 미칠 영향에 대해 검토하고 살펴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나아가 이것이 우리와 관계를 맺고 있는 다른 나라의 가난한 민중들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 고려하는 것이다. 이렇게 해야 하는 까닭은 우리가 서로 다른 나라에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세계 경제 체제 안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전체적으로 월터스토프의 글은 한국교회가 그리도 중시 여기는 칼뱅의 사상이 얼마나 개혁과 변화를 지지하고 지원하는지를 잘 드러내 주고 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인 한 개혁적일 수 밖에 없다. 이 땅의 나라의 기준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께서 창조하시고 예수님께서 명령하신 질서와 말씀들을 따르는 한 세상 그 누구보다 개혁적이고 진취적일 수 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개혁이야말로 그리스도인의 운명과도 같다 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개혁의 방향은 하나님의 나라이며, 월터스토프의 적절한 표현대로 하자면 정의와 평화의 나라이다. 참된 평화는 정의의 실현에서 오며, 그로 인해 임하는 평화는 하나님과 사람의 회복뿐 아니라 사람과 사람의 회복, 사람과 자연의 회복까지도 모두 포괄한다. 정의와 평화가 함께 만나는 세상이 가능함을 믿고 바라고 달려가는 이들이 그리스도인이며 이러한 꿈과 소망을 가진 것이 우리의 자랑일 것이다.


덧글

  • 멧돼지 2010/02/19 15:53 # 삭제 답글

    교수님의 셩경관을 뒷받침하는 책이로군요. 의와 공도를 이루라는 하나님의 명령(창18:19)에 복종하는 것이 기독교라면 기독교인이 되는 일은 굉장히 힘들군요.우리 평범한 인간들은 하루 하루 십계명 지키며 일상을 살아가는 것도 너무 힘들거던요.우리 사회를 분석하고 그 모순점을 지적하고 고쳐나가야 한다는 것은 참으로 힘에 부치는 일 같습니다.타인에게 해끼치지 않고 자기 힘으로 살아가는 것도 얼마나 버거운지요?
  • 멧돼지 2010/02/19 17:11 # 삭제 답글

    십계명 지키며 일상을 산다는 얘기도 불가능한 얘기지요.그저 도둑질하지 않고, 남에게 주는 피해를 극소화하면서 하나님 경배하는 것을 잊지 않는 정도도 굉장히 힘들다는 것이죠. 우리 사회의 돌아가는 모습을 잘 관찰하여 불합리한 제도의 탈을 쓴 악을 개혁한다는 일- - - - 힘든 일이기는 하나 해내야 하는 일이지요. 그러니 리얼 크리스챤이 되는 일은 낙타가 바눌 구멍에 들어가는 일 정도죠.
  • 연탄 2010/02/22 09:36 # 답글

    주일 잘 보내셨습니까?
    주님께서 우리에게 명하신 것은 우리가 해내야 할 의무이기도 하지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제시하신 풍성한 삶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나같은 사람에게 이렇게 귀한 사명과 마음을 주신 것이 놀라운 은혜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율법의 모든 조항은 그런 점에서 의무라기보다는 은혜인 것 같습니다.

    할 수 있는 만큼 하고, 은혜 주시는 대로 순종하고, 그렇게 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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